뒤늦은 2023 서울재즈페스티벌(서재페) 후기. 올림픽공원에서는 거의 매 주 마다 다양한 콘서트와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그 중에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서재페도 있다. 이런 공연에 적극적인 취향은 아니지만, 서재페만큼은 예전부터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꽤 부담스러운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1일권 187,000원) 가기로 결정했다.
1일권만 사기로 했는데, 라인업만 고려했을 때 특별히 끌리는 요일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토요일에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나중에 운이 좋게 지인으로부터 금요일 입장권까지 받게 되어 이틀을 연속으로 즐길 수 있었다.
2023 서울재즈페스티벌 행사개요
- 행사 기간 : 23. 5. 26(금) ~ 5. 28(일), 3일간
- 티켓 가격 : 1일권 187,000원, 3일권 420,000원
- 장소 : 올림픽공원
- 주요 참가 뮤지션 : 그래고리 포터, 데미안 라이스, 미카, 크리스토퍼 등

1일차(금요일)

1일차인 금요일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적당히 바람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고, 잔디밭에 노래 들으며 자는 사람들도 있고 맥주 마시며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나라가 아니라 해외 뮤직 페스티벌 같았던 첫날. 이날만 날씨가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더 제대로 즐기는건데…
크러쉬

원래도 크러쉬를 좋아했지만, 이날 이후로 더 좋아졌다. 노래를 이 정도로 잘했었나 싶었다. 크러쉬의 장점은 어떤 분위기의 노래도 가능한 다재다능한 싱어라는 점이다. ‘SOFA’ 같은 슬프고 느린 발라드부터, 방방 뛸 수 있는 노래까지. 분위기 띄우는 능력도 좋았다. 무대 장악력이 장난 아님.
그레고리 포터

첫날 88잔디마당의 헤드라이너였던 그레고리 포터. 이날 처음 알게된 가수인데, 너무 좋아 지금까지도 가끔 듣고 있다. 그레고리 포터가 부른 ‘Holding on’의 첫 소절에 반해버렸다. 안그래도 이런 소울풀한 목소리를 찾고 있었는데 발견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분이 좋았다.
2일차(토요일)

토요일은 금요일과는 다르게 비가 많이 왔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그렇게 많이올 것 같지 않았고, 실제로 이른 오전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하지만 입장 줄을 서기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내리더니, 88잔디마당에 자리를 잡으러 들어갈 때는 쏟아지더라. 꽤 괜찮은 자리를 잡았지만 하루 종일 비 맞으며 거기 앉아 구경하는건 힘들어보였고 우리는 한 5분 고민하다가 집에 가서 재정비 하기로 결정했다. 오후에도 비는 오다 말다를 반복하며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덕분에 기억에는 정말 많이 남는다.
권진아

페스티벌형 가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음색은 유명한 만큼 좋았고, 생각보다 소리에 힘도 있었다. 아는 노래가 많지 않았지만 쇼맨십도 좋고 생각보다 말도 잘해서 재밌었던 무대였다. 평소에 잘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노래들을 알게 된 무대. 찾아보니까 97년생이네… 카리스마 때문일까. 내 또래인줄.
마이 앤트 메리

내가 기대했던 공연 중 하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던 락밴드였고, 마이 앤트 메리의 3집 ‘JUST POP’은 정말 내가 지겹도록 들은 음반 중 하나이다. (2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도 수상한 명반이다) 5집 활동 이후 해체되어 아쉬웠는데, 어느새 재결합하여 음반을 내면서 2023 서울재즈페스티벌에도 얼굴을 비췄다.
토요일 중 가장 비가 많이 내리던 시점에 야외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본인들도 좀 당황하고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었는지 리허설도 엄청 길게 하더라. 그래서 기다리다 지친 것도 있고, 비가 정말 많이 와서 춥고 불편해 무대를 100% 즐기지는 못했다. 평소에 엄청 듣던 노래들을 라이브로 들은 것에 만족. (새 앨범의 곡들은 전작들에 비해 아쉬움)
태양

역시 글로벌 스타. 비가 많이 왔음에도 잔디광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태양의 최신 노래들은 잘 모르지만 1, 2집은 정말 많이 들었는데. 무엇보다 이번 서재페 할 때 쯤 엄청 핫했던 밈 ‘여러분~ 너무 많이 보고 싶었어~’ 이걸 실제로 해줘서 정말 행복했다.
에픽하이

뮤직 페스티벌에서 분위기 띄우는데는 역시 힙합이 최고지 않을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장난 아니었던 에픽하이. 세 명의 호흡이 찰떡이고, 공연을 이끌어가는 스킬이 정말 프로페셔널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곡 하나하나 다 아는 노래들. 지금은 찾아듣지 않지만 내 10대와 20대 초를 함께한 에픽하이.
크리스토퍼

외국 가수들이 한국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겠더라. 난리도 아니었다. 여성 분들이 특히 좋아하심. 영상으로 보던대로 잘생기고 노래 잘했다. 좋아하는 타입의 가수는 아니었지만 곡 자체가 워낙 좋고 무대도 재밌었다.
좋았던 점
항상 공연장 펜스 밖에서 지켜만 보던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직접 경험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비가 많이 왔지만, 나는 다행히 집이 가까워 그렇게까지 힘들지도 않았다. 아래에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적었지만 좋은 기억이 훨씬 크다.
아쉬웠던 점
티켓 가격이 비쌌고 작년 대비해서도 꽤 올랐다. 1일권 기준 187,000원. 22년 1일권이 165,000원이었으니 일 년 사이에 22,000원이나 오른 것이다. %로 따지면 13% 오른거니 물가상승률 대비로도 많이 오른 셈이다.
라인업이 아쉬웠다. 재즈 페스티벌이라고 하가엔 좀 민망할 정도로. 해외 가수들도 평소에도 내한을 정기적으로 하는 가수들이었다. 그리고 본인 곡들을 재즈식으로 편곡하기 보다는 그냥 원곡 그대로 부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재즈 페스티벌이라기 보다는 팝 페스티벌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나는 재즈에 대해 깊게 아는건 아니지만 재즈 팬들이라면 분명 아쉬웠을 부분.
실내 공연장들의 음향이 별로였다. 이번 서재페에서는 총 네 곳에서 공연이 펼쳐졌는데 행사 기간 내내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실내인 KSPO DOME, 핸드볼경기장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그에 비해 음향은 전체적으로 선명하지 않고 울리는 느낌이라 거슬릴 때가 많았다. 단독콘서트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